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인하대 교수 선언
- 6월 민주항쟁 22주년에 즈음하여
한국사회는 지금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새 정권이 출범한 지 이제 겨우 1년 3개월이 되었을 뿐인데 국민들 사이에서는 민주주의, 경제안정, 사회통합, 남북관계 등 모든 부문에서 거꾸로만 치닫고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점증하고 있다. 그러나 현 정권은 이에 대해 그 어떤 납득할만한 응답도 구체적 해소방안도 내놓지 못하고, 광범한 국민적 의구심과 불신, 나아가 저항의 바다 위를 표류하고 있을 뿐이다. 나름대로 국민의 선택을 받아 등장한 정권이 이처럼 통치부재와 소통부재의 무능과 무기력을 두루 보여주고 있는 것에 분노에 앞서 차라리 허탈감이 앞선다.
이명박정권의 등장은 문민정부에서 참여정부에 이르는 동안 소중하게 뿌리내리고 성장해 온 민주적 가치와 제도들의 토대 위에서 경제발전과 사회통합을 이루어내라는 국민적 여망에 힘입은 것이다. 실용주의 경제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이 호소력을 가졌던 것은 그것이 이념적 갈등과 구태 정치의 악순환에서 벗어난 참신하고도 성숙한 정치, 그리고 내실 있는 경제발전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부합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1년여의 이명박 통치는 그러한 기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경제대통령’은 정치적 무능을 변명하는 말이 되었고, ‘실용주의’는 정권 안보를 위해서만 긴요하게 발휘되어 왔다. 민주주의는 뿌리째 흔들리고 경제안정은 난망이 되었으며 사회통합은커녕 사회적 갈등은 일촉즉발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으며 남북관계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반적 실정보다 더 큰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과 현정권의 통치행태 자체가 민주정치의 기본을 원천적으로 거스르고 있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작년의 촛불정국에 대한 대처에서 보았듯이 현정권은 민주사회에서 국가정책과 국민여론의 갈등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설득과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국민적 저항과 반대를 묵살하거나 물리적으로 침묵시키거나 아니면 요령껏 회피해야 할 방해물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스스로 선거에 의해 탄생한 합법적 정권이면서도 마치 쿠데타에 의해 수립된 비합법정권인 것처럼 정당한 절차 대신 공권력의 폭력과 기회주의적 기만책을 동원하는 음모적 방식의 통치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진보세력은 물론 상당수의 보수세력들까지 현정권에 비판적으로 돌아서게 된 가장 큰 이유이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길지 않은 집권기간 안에 설익은 가시적 결과물을 내기에 급급한 나머지 그를 위한 사회적 합의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건너뛰려 하는 역사상의 그 어떤 시도도 정권 자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명백하게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년여 동안 현정권의 행보는 국민의 소리에 귀막고 국민의 아픔에 눈감아 민주정신에 역행하였고 국민 모두의 뜻을 모으는 대신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혀 공화주의를 배신하였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비극적 서거 앞에서 절대다수의 국민이 그토록 애도한 것은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인간적 공감과 연민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그의 시대에는 하나의 당연한 상식이었던 이 민주공화국의 기본 정신이 현정권 아래서 헌신짝처럼 유린되고 있다는 데서 오는 깊은 분노와 절망 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하나의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경제적으로는 맹목적 시장숭배, 사회적으로는 승자독식의 야만적 경쟁논리, 정치적으로는 독선과 음모가 지배하는 개발독재사회의 길과, 공동체 구성원들의 따뜻한 연대와 소통, 그리고 상호부조의 공동체 정신에 기초한 성숙한 민주사회의 길 사이에서 어떤 길로 방향을 잡는가에 따라 대한민국이 진정 사람이 살만한 품위있는 사회가 되는가 아니면 신자유주의의 불행한 디스토피아로 전락하는가가 결정될 것이다.
이에 우리는 민주공화국의 헌법정신을 굳건하게 정초시킨 6.10 민주항쟁 22주년을 맞이하며 민주사회의 정신적 근간을 지켜야 할 지식인이자 미래 사회의 동량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의 자세를 다시금 가다듬으며 현 이명박정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요구하고자 한다.
1. 지난 1년여의 독선적이고 반민주적인 통치행태를 즉각 중단하고 그간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진정한 용서를 구하라.
1. 정권 내외부의 민주적 소통과 합의를 저해하는 요소들을 과감히 척결하기 위한 청와대, 내각, 여당 전반에 걸치는 인사개혁을 단행하라.
1. 집시법 개악, 미디어 관련법 개악 등 언론,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에 역행하는 모든 정책의 시행과 법안 개폐의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1.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시민사회와의 대화와 소통의 통로를 마련하고 이를 지속할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하라.
2009년 6월 10일
뜻을 같이하는 인하대 교수 73인 일동
강병구 강현주 김갑중 김대환 김명인 김문교 김민배 김병준 김석회 김성택 김 영 김영순 김웅희 김인재 김인회 김진경 김진공 김진방 김진석 김태승 노애경 노철언 명승환 민경진 민정기 박선미 박영일 박혜영 백은희 서경석 성완경 손민호 송용진 신황호 원동준 원종찬 유영종 육상효 윤승준 윤정혜 윤진호 윤홍식 이경주 이규성 이봉규 이석우 이영호 이유정 이재우 이현우 이환범 이훈재 임종한 장경호 장세진 장윤희 정기섭 정영태 정재훈 정은귀 정태욱(법학) 정학성 조강현 조장천 차동우 차태근 최기영 최원식 최지호 한성우 함병승 허남정 홍영진 (가나다 순)
- 6월 민주항쟁 22주년에 즈음하여
한국사회는 지금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새 정권이 출범한 지 이제 겨우 1년 3개월이 되었을 뿐인데 국민들 사이에서는 민주주의, 경제안정, 사회통합, 남북관계 등 모든 부문에서 거꾸로만 치닫고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점증하고 있다. 그러나 현 정권은 이에 대해 그 어떤 납득할만한 응답도 구체적 해소방안도 내놓지 못하고, 광범한 국민적 의구심과 불신, 나아가 저항의 바다 위를 표류하고 있을 뿐이다. 나름대로 국민의 선택을 받아 등장한 정권이 이처럼 통치부재와 소통부재의 무능과 무기력을 두루 보여주고 있는 것에 분노에 앞서 차라리 허탈감이 앞선다.
이명박정권의 등장은 문민정부에서 참여정부에 이르는 동안 소중하게 뿌리내리고 성장해 온 민주적 가치와 제도들의 토대 위에서 경제발전과 사회통합을 이루어내라는 국민적 여망에 힘입은 것이다. 실용주의 경제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이 호소력을 가졌던 것은 그것이 이념적 갈등과 구태 정치의 악순환에서 벗어난 참신하고도 성숙한 정치, 그리고 내실 있는 경제발전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부합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1년여의 이명박 통치는 그러한 기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경제대통령’은 정치적 무능을 변명하는 말이 되었고, ‘실용주의’는 정권 안보를 위해서만 긴요하게 발휘되어 왔다. 민주주의는 뿌리째 흔들리고 경제안정은 난망이 되었으며 사회통합은커녕 사회적 갈등은 일촉즉발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으며 남북관계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반적 실정보다 더 큰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과 현정권의 통치행태 자체가 민주정치의 기본을 원천적으로 거스르고 있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작년의 촛불정국에 대한 대처에서 보았듯이 현정권은 민주사회에서 국가정책과 국민여론의 갈등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설득과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국민적 저항과 반대를 묵살하거나 물리적으로 침묵시키거나 아니면 요령껏 회피해야 할 방해물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스스로 선거에 의해 탄생한 합법적 정권이면서도 마치 쿠데타에 의해 수립된 비합법정권인 것처럼 정당한 절차 대신 공권력의 폭력과 기회주의적 기만책을 동원하는 음모적 방식의 통치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진보세력은 물론 상당수의 보수세력들까지 현정권에 비판적으로 돌아서게 된 가장 큰 이유이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길지 않은 집권기간 안에 설익은 가시적 결과물을 내기에 급급한 나머지 그를 위한 사회적 합의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건너뛰려 하는 역사상의 그 어떤 시도도 정권 자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명백하게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년여 동안 현정권의 행보는 국민의 소리에 귀막고 국민의 아픔에 눈감아 민주정신에 역행하였고 국민 모두의 뜻을 모으는 대신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혀 공화주의를 배신하였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비극적 서거 앞에서 절대다수의 국민이 그토록 애도한 것은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인간적 공감과 연민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그의 시대에는 하나의 당연한 상식이었던 이 민주공화국의 기본 정신이 현정권 아래서 헌신짝처럼 유린되고 있다는 데서 오는 깊은 분노와 절망 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하나의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경제적으로는 맹목적 시장숭배, 사회적으로는 승자독식의 야만적 경쟁논리, 정치적으로는 독선과 음모가 지배하는 개발독재사회의 길과, 공동체 구성원들의 따뜻한 연대와 소통, 그리고 상호부조의 공동체 정신에 기초한 성숙한 민주사회의 길 사이에서 어떤 길로 방향을 잡는가에 따라 대한민국이 진정 사람이 살만한 품위있는 사회가 되는가 아니면 신자유주의의 불행한 디스토피아로 전락하는가가 결정될 것이다.
이에 우리는 민주공화국의 헌법정신을 굳건하게 정초시킨 6.10 민주항쟁 22주년을 맞이하며 민주사회의 정신적 근간을 지켜야 할 지식인이자 미래 사회의 동량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의 자세를 다시금 가다듬으며 현 이명박정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요구하고자 한다.
1. 지난 1년여의 독선적이고 반민주적인 통치행태를 즉각 중단하고 그간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진정한 용서를 구하라.
1. 정권 내외부의 민주적 소통과 합의를 저해하는 요소들을 과감히 척결하기 위한 청와대, 내각, 여당 전반에 걸치는 인사개혁을 단행하라.
1. 집시법 개악, 미디어 관련법 개악 등 언론,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에 역행하는 모든 정책의 시행과 법안 개폐의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1.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시민사회와의 대화와 소통의 통로를 마련하고 이를 지속할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하라.
2009년 6월 10일
뜻을 같이하는 인하대 교수 73인 일동
강병구 강현주 김갑중 김대환 김명인 김문교 김민배 김병준 김석회 김성택 김 영 김영순 김웅희 김인재 김인회 김진경 김진공 김진방 김진석 김태승 노애경 노철언 명승환 민경진 민정기 박선미 박영일 박혜영 백은희 서경석 성완경 손민호 송용진 신황호 원동준 원종찬 유영종 육상효 윤승준 윤정혜 윤진호 윤홍식 이경주 이규성 이봉규 이석우 이영호 이유정 이재우 이현우 이환범 이훈재 임종한 장경호 장세진 장윤희 정기섭 정영태 정재훈 정은귀 정태욱(법학) 정학성 조강현 조장천 차동우 차태근 최기영 최원식 최지호 한성우 함병승 허남정 홍영진 (가나다 순)